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종범/선수 경력 (문단 편집) === 은퇴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aFf1w7JjjOI, width=640, height=360)]}}}|| || {{{#fff ▲ '''이종범 은퇴식 당시 이종범에 대한 말말말'''}}} || >'''이종범이 떠날 시간은 이종범이 정한다. 이종범은 그럴 자격이 있다.''' >---- > ㅡ [[최의민]] 2012년 스프링캠프에서 좋은 훈련 성과를 보였고 시범경기에서도 12타수 4안타를 치는등 나름대로 활약을 해서 최고령 현역선수로서의 활약이 기대되었지만... 2012년 3월 31일, 한화와의 시범경기 종료후 '''은퇴를 선언했다.''' [[이순철]] 수석코치가 이종범을 불러 개막전 엔트리에 들지 못할것이라고 밝혔고, 이에 이종범은 갑작스런 은퇴를 선언하였다. 노장임에도 현역 선수로써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 준비를 많이 했던만큼 이종범 본인도 아쉬웠던 것. 한때 코치진 및 구단 간의 갈등이 있기도 했지만, 이후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통해서 논란의 불씨를 잠재웠다. 이후 4월 5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하겠다고 밝혀 결국 현역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204051528521|일단 본인의 발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은퇴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지난 2008시즌이 끝나고 나서였다. * 그 때부터 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옷을 벗을 작정이었다. * 대주자나 대수비로라도 타이거즈가 이기는데 필요로 한다면 끝까지 뛸 생각이었다. * 지금에 이르러서 팀에서 더 이상 할 몫이 남아있지 않아 은퇴를 결심했다. 4번에서 보듯 그의 은퇴 선언 배경에는 '타이거즈 색이 약했던[* TK 출신. OB-삼성에서 선수생활을 함]' [[조범현]] 감독 체계에서 '타이거즈의 색이 강한[* 광주 출신으로, 해태의 레전드.]' 선동열 감독 체계로 바뀌며 타이거즈 프랜차이즈로써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이종범의 역할이 없어진 것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조범현 감독 하에서는 전성기를 한창 지난 노장임에도 팀을 결집시킬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이종범이 중용되어 경쟁을 통해서도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감독 체계에서는 더 이상 이런 역할을 이유로 남을 수 있는 명분이 약화되자 비슷한 성적을 내는 젊은 선수들을 더 출장시키려는 입장과 충돌하면서 은퇴를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은퇴 관련해 이종범 본인의 배경과 이유가 어찌되든 [[양준혁|선동열의 전적]] 및 여러 주변 정황 때문에 다수의 여론은 '''또 이렇게 [[선동열]]은 한명의 레전드를 보내는구나''' 하고 비난했고, [[http://sports.news.nate.com/view/20120402n03141?mid=s1004&isq=3498|불암콩콩코믹스에서도 호되게 깠다]]. 거기에 이종범의 은퇴식 한달 뒤 6월 28일 기사에 따르면 [[선동열]] 감독이 이종범에게 은퇴를 권유하는 것과 달리 또 다른 노장 [[최향남]]을 영입을 한 것에 대해서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373221|'''이종범은 야수이고 최향남은 투수이기 때문에''' 최향남의 복귀가 가능했던 것]]이라고 밝혔으니[* 사실 이거저거를 떠나 선동열은 야수들에 대한 평을 박하게 하는 편이었다.] 팬들 입장에서는 [[확인사살]]로 인식되었는데, 이는 2010년 [[양준혁]] 은퇴 당시에도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이종범과 최향남은 '''불과 1살 차이다.'''[* 거기에 대졸인 이종범에 비해, 최향남은 고졸 신인 출신이라 프로 입단은 이종범보다 3년이나 빠르다.][* 선동열이 삼성 감독을 맡았을 때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71년생 내야수인 [[김한수]]의 경우 2007년 시즌 후 FA 계약이 1년 남아있었는데도 강제로 은퇴시켰는데, 정작 비슷한 시기 김한수와 71년생 동갑내기인 투수 [[이상목]]이 롯데에서 방출되자 곧바로 영입해왔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https://youtu.be/3kNPyoX-KF0|MBC SPORTS+ 구구절절]]에서 털어놓은 얘기에 따르면 [[KBO 리그 2차 드래프트/2012년|2012년 2차 드래프트]] 보호선수 명단에서 자신이 제외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다른 팀이 데려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으나 결국 이종범을 데리고 가는 팀은 없었고 그래서 다음에 바로 은퇴했다고 말했다. [[KIA 타이거즈/2012년|2012 시즌]]이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서 다시 이종범의 은퇴를 다시 생각해본다면, 결과적으로 이종범의 갑작스런 은퇴는 '''KIA 선수단 운영에 독이 되고 말았다'''. 이종범의 기량은 예전같지 않았고 다른 젊은 선수들에게 밀린다고 하더라도 그가 팀 선수단에서 여전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에게 직접 조언을 해줄 수 있고 다른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는 리더형 고참선수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최희섭]], [[이범호]]의 이탈이나 젊은 선수들의 기량 저하에 대해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정신적 지주를 갑작스럽게 잃어버린 KIA에게는 큰 공백이 되어버렸고, 결과적으로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과거 삼성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선동열]]이 총대 메고 고참을 은퇴시키고 젊은 선수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은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306042&sc=naver&kind=menu_code&keys=7|KIA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었던 셈]]. 야구를 제외한 축구, 배구 같은 스포츠에서 팀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레전드 반열에 이미 올라서있는 베테랑 선수를 이런 식으로 은퇴시키지는 않는다. 후배 선수들에게 조언해주고 팀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다면 더더욱 그러한데, 기아는 이종범의 자리를 없앰으로서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기둥을 스스로 부숴버린 셈이다. 향간에선 이종범의 은퇴 영향으로 [[이정후]]가 서울로 전학을 가서 넥센 히어로즈의 1차 지명으로 입단하는 결과를 만든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는 중.[* 타 권역으로 전학을 가면 1차 지명 자격이 소멸될건데 어떻게 가능하냐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당시는 1차지명이 부활하기 이전이어서, 1차지명이 부활한 이후 폐지되었던 기간동안 전학을 간 선수들에 대해 전학선수 1차지명 금지규정을 소급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넥센의 1차 지명을 받는게 가능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한데 실제로 이종범의 가족이 서울로 가게 된건 후술할 음악을 전공한 딸(이자 이정후의 여동생)의 교육 문제가 제일 컸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서울과 지방의 인프라 격차가 크고 예체능쪽은 더 하다보니 어차피 재력이 되는 이상 서울에서 교육을 받는게 최선의 선택일 수 밖에 없다. 야구도 예외라 볼 수 없는데 이정후가 서울로 전학을 갈 당시엔 이미 지방의 유소년 선수들이 인프라 격차로 인해 수도권 야구부로 전학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즉 이종범이 은퇴를 하지 않거나 KIA의 코치로 남아서 [[기러기 아빠|혼자 광주에서 생활했더라도]] 위의 이유도 그렇고 중학생에 불과한 이정후가 직업 특성상 외지 출장이 잦은 아버지보단 어머니와 동생을 따라 서울로 가는게 더 나은 선택일 수 밖에 없었고 실제로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무엇보다도 이정후의 고등학교 당시 성적이 그렇게 특출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KIA가 그대로 [[유승철]]을 지명했을 것이다.][* 다만 이정후가 KIA의 1차 지명을 받았더라도 키움에서의 활약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정후가 데뷔한 2017시즌 당시 KIA의 외야는 [[최형우]], [[로저 버나디나]]로 고정된 두자리에 시즌 초 잠재력을 보인 [[노수광]]이라는 유망주가 있었고 이후 트레이드로 온 [[이명기]]가 KIA의 주전 우익수가 되었다. 또한 시즌 초 버나디나의 극심한 부진에도 [[김기태(1969)|김기태]] 감독의 꾸준한 기용으로 결국 기량을 발휘하고 우승의 원동력이 되었던 걸 생각하면 2017시즌의 외야 구성이 타이거즈 역사에 꼽힐 정도로 빈틈없었기 때문에 데뷔 초부터 외야 전향은 꿈도 못 꿨을 것이란 이야기가 많다. 그렇다고 내야로 쓰기도 뭐한게 2루수와 유격수는 전역을 한 [[안치홍]]과 [[김선빈]]이라는 프랜차이즈 타자들이고 1루와 3루 역시 [[김주찬]], [[이범호]]라는 걸출한 베테랑이라 이정후가 주전을 먹을만한 곳은 전혀 없었다. 결정적으로 이정후가 첫 시즌부터 주전 외야수로 중용된건 당시 넥센의 감독인 [[장정석]]의 영향이 컸기 때문에 쓸놈쓸 성향과 멀티 포지션 기용을 좋아하는 김기태였으면 당시 팀 상황과 맞물려 쭉 2군에 있거나 1군에서 정해진 포지션 없이 후보로 뺑뺑이만 돌았을 것이고 성장도 그만큼 더뎌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당장 KIA에 뛰고 있는 내야수 출신인 1년 선배 [[최원준(1997)|최원준]]이 그걸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 더군다나 KIA는 야수 보는 눈도 없고 키운 야수도 손에 꼽는 신인 야수들의 무덤으로 악명 높다 보니 차라리 서울로 전학가서 키움의 프랜차이즈 타자가 된게 이정후나 키움에겐 다행일 수 밖에 없다. 애시당초 서술 돼있듯, 이종범의 마지막 경기 등 기아의 대우에 분노한 이정후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평생 KIA를 싫어할것이라고 글을 남기기도 했으니 지명이 된다한들 가지도 않았을것이다.][* 결국 이정후는 2022년 6월 12일 자신의 고향에서 열린 KIA전에서 자신의 프로 커리어 첫 만루홈런과 첫 연타석 홈런을 쏘아올리는 기염을 토하며 10년 전 자신의 아버지를 은퇴시킨 KIA를 영혼까지 탈탈 털었다.] 기자회견에서 이종범은 SK [[김원형]]처럼 따로 은퇴경기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하였다. 다만 시즌 중후반 은퇴식을 가지기로 할 예정이라고 한다. 구단에서는 플레잉 코치, 코치 연수 및 연봉 보전 등을 보장하려 했지만 은퇴식과 영구결번을 제외하고 구단의 제안을 사양을 하였고, 현재는 휴식기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후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돌아올 것임을 언급하면서 지도자로써의 진로를 암시하였다. 사업가나 해설가로써의 진로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하였다. 한편 은퇴 발표 이후 음악 전공인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한다고 한다. 2012년 4월 30일에 나온 기사에 의하면 [[고양 원더스]]의 김성근 감독 밑으로 들어가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한다. 이에 김성근 감독도 문은 열려있다고 긍정적으로 반응해 고양 원더스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김응룡 밑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이제 김성근 밑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게되는 이종범의 차후 지도자 행보에 대한 관심도 커진 상황. 2012년 5월 26일 [[무등 야구장]]에서 [[LG 트윈스]]와의 홈경기에서 은퇴식을 치른다. 이날 은퇴식에서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355829|시구자로 마운드에 오른다.]] 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 소화 경력이 있는데, 이로써 본인이나 팬들은 시구로 아쉬움을 달랠 듯 하다. 참고로 모든선수가 이종범의 등번호인 7번을 달고 뛰었고 시타는 당시 중학생이었던 [[이정후]]가 했는데, 치기 좋게 제대로 공을 못 던졌다고 아버지를 깠다고 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r3KOYwehExM, width=640, height=360)]}}}|| || {{{#fff ▲ '''2012년 5월 26일 [[무등 야구장|{{{#fff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이종범 시구 & 아들 이정후 시타'''}}} || 선수 시절 화려한 전성기와 암흑기, 그리고 고난과 좌절을 견뎌내면서 커리어를 지켜왔던 이종범의 선수 생활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은퇴식을 치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대진]] 선수가 이종범 선수의 아내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는 기사가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18&article_id=0002609028|나왔다.]] 2012년 7월 2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일 레전드 매치에 출전하였다. 여전히 녹슬지 않은 주루플레이와 호수비 등을 보여주었으며, 이날 활약에 힘입어 MVP로 선정되었다. 경기는 한국 OB가 5:0으로 승리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